매일 아침 묘지를 도는 것이 제 일과 중의 하나입니다.
묘지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멀리 보이는 아포 산을 바라봅니다.
날씨가 흐린 날이면 구름에 가리워 잘 보이지 않을 때도 있지만
저는 이 산을 바라보는 것을 참 좋아합니다.
Mt. Apo
산 이름이 '아포'입니다.
아포는 이곳 말로 손자라는 의미이지만 이 산의 모습을 보면 손자가 아니라 할아버지 모습처럽
아주 웅장하고 멋이 있는 모습입니다.
필리핀에서 가장 높은 산이랍니다.
저는 이산을 바라보는 것과 잔잔하게 흐르는 강이 보이는 곳을 지나는 것을 좋아합니다.
조용하고 한산한 이곳
거기에 한줄기 바람이라도 불어주면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10월 하순이 되면서 묘지가 바빠집니다.
11월 1일 Saints & Souls' Day가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나무 가지도 정리를 하고 차가 지나가는 곳에는 파킹을 할수 있도록 노랗게 칠도하고
깨끗하게 정리를 합니다.
이 묘지터는 부유층의 묘지인지라 몇몇 묘지는 웬만한 사람 살림 집보다 훨씬 훌륭합니다.
이층에다 에어컨 시설도 되어있고 부엌과 화장실도 있습니다.
담 너머 보이는 중산층의 묘지
이 날은 제가 이곳에서 알게 된 필리핀의 공휴일 중 가장 이색적이고 특별한 날인것 같습니다.
열흘이나 일주일 전부터 묘지위에 텐트가 세워지고 묘지 근처에는
나무로 엉성하게 지은 구멍 가게들이 들어섭니다.
하루나 이틀을 이 묘지에서 온 가족 친지가 함게 모여 고인을 기리며
함께 먹고 즐기며 묘지에서 같이 잠을 잡니다.
이 나라 최대의 공휴일이자 명절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추석 때면 고향을 향한 대 이동이 있는 것처럼
이들도 온 나라가 대 이동을 하는 모습을 뉴스를 통해 봅니다.
참으로 특이한 것은 이 묘지에는 슬퍼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즐거워하고 마치 유원지에 온 것처럼 온 가족이 먹을 것을 준비해 와서 노래도 부르고
아이들은 뛰어 놀고 묘지에는 대형 스크린을 만들어 영화도 상영하고
반짝 반짝 빛이나는 형광 놀이 장난감이며 미국의 할로윈 데이를 모방한 온갖 가면등이 등장합니다.
경찰과 구급대원도 배치되고 ....
여기가 묘지 맞아? 하는 생각에 얼떨떨해집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로 보았을 때 정말 말도 안되는 풍습이지요.
하필 그 많고 많은 장소 중에 묘지에서
조용히 고인을 기억하는 것이 아닌 시끌벅적 야단들입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흩어져 있는 친지들이 한곳으로 모여 연합하는 아주 중요한 날이랍니다.
묘지를 두렵고 무서운 곳으로 보다는 고인이 된 사랑하는 가족이 머무르는 곳으로 여기며
하루를 함께 보내는 가족 연합에 그 의미를 두고 있지요.
변형된 종교와 중국의 일부 풍습이 혼합되었다고하는데 사실 여부는 모르겠지만
정말 특이한 풍습입니다.
작년에는 하필 이 날에 천막이나 텐트로는 감당할 수없을 만큼 큰비가 쏟아져서
허허벌판 묘지에서 어떻게 밤을 보냈을지 궁금 했었는데 아침에 가 보니 다들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지내고 있어 참 대단하다 생각 했었지요.
올 해도 비가 간간히 내렸지만 여전히 잘 들 보낸것 같더라구요.
우리 이웃 아줌마 도나도 이 때가 되면 무척 바빠집니다.
성묘를 위한 꽃도 팔고 음료수와 초, 햄버거, 간식거리 등 한 두평짜리 수퍼 마켓이 등장합니다.
이들에게는 이 때가 대목인지라 멀리 시골에서 동생들과 친정 어머니도 오십니다.
작년도 제작년에도 얼마나 벌었는가 물었는데 수입이 아주 좋았다고 수줍어하며 말합니다.
우리 집은 묘지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가깝기 때문에 이날을 전 후로 자동차 소음과 공해가 굉장할 뿐아니라
좁은길에 엄청난 수의 차들이 다니느라 길이 항상 막혀 있답니다.
그래도 일년에 한번 가족이 함께 연합하여 즐기는 날이라니 이해 해주어야지요.
아뭏튼 나라마다 각기 특색이 있다지만 참으로 생각의 차이와 풍습의 차이를 크게 실감하였답니다.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둣 다시 조용하고 한산해졌지요.
흐린 날임에도 아포산이 나를 반갑게 맞아줍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내가 믿느냐
요한복음 11장 25~26절